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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지표로 삼는 기독교 정신 아래 머리로 배우는 지적교육, 가슴으로 느끼는 정적 교육, 손으로 일하는 의지적 교육을 실현하여 知·情·意가 균형 있게 성장하는 인격자를 양성하고자 한다”
학교법인 동서학원은 1965년 민석 장성만 박사가 '기독교 정신의 구현'을 건학이념으로 설립하였다. 설립자이신 민석 장성만 박사는 경남정보대학(1965년 개교), 동서대학교(1992년 개교), 부산디지털대학교(2002년 개교), 이렇게 3개 대학을 세워 그 동안 10만에 가까운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약 2만명의 재학생과 1천명의 교수, 직원이 재직하는 큰 교육기관으로 키워냈다.
1961년 오사카 성서신학교 졸업하고 1964년 미국 신시내티신학대학원 수료, 1975년 미국 미드웨스트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일본과 미국유학 기간 중 가장 중요한 전기를 맞는다 . 미국이 철저한 기술자를 중심으로 한 산업 사회인것을 통감한 설립자는 한국이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기능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어 미국 20개주(州) 50여개 교회를 돌면서 강연과 설교를 한 결과 많은 동지를 얻어 재미후원회(재미재단 이사회의 전신)를 조직하여 은사인 래쉬 선교사와 함께 1965년 2월 1일 동서학원을 설립하고 경남정보대학교의 전신인 영남기독실업학교를 개교하였다.
장성만 설립자는 1981년 3월 부산 북구에서 제11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제12대 총선에서도 여당 출신으로는 부산에서 유일하게 1등으로 당선돼 1985년 당정책위의장, 1987년 국회부의장을 역임하는 등 탁월한 정치 역량을 보였다. ‘부지런한 정치인’으로 통한 장성만 박사는 정계 활동 당시 의료보험제 전면 실시, 최저임금제 실시, 서민을 위한 7대 복지정책 개발 등 오로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정치를 했다.
1992년에는 眞理, 創造, 奉仕를 교훈으로 하는 4년제 대학인 동서공과대학(현 동서대학교)을 개교하였고 8개학과, 400명이 입학하였다. 장성만 총장은 '작은 大學 큰 改革' 을 21세기형 대학 모델의 기초로 삼아 '세계화' · '특성화' · '정보화' 라는「교육개혁 3대 비전」을 제시했다. 그리고 '외국어교육' · '정보교육' · '산학협동교육' · '인성교육' 을 4대교육지표로 설정하고, '교육내용'·'행정제도'·'평가제도'·'연구제도' 등 5개 교육개혁을 단행하여 교육의 질적 향상을 촉진시켰다. 이것이 동서대를 세계화 대열에 올려놓은 지렛대가 되었다. 개교 당시의 허허벌판이 세계로 도약하는 21세기형 글로벌 캠퍼스로 변하였고, 많은 국내외 저명인사들이 찾아오는 '신명문(新名門)'으로 기반을 굳혔다.
2005년 12월 부산지역 목사·장로들과 뜻을 합해 ‘크리스천 21세기 포럼’을 창립하고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장성만 박사는 소말리아 해상에서 해적들에게 피랍됐던 마부노호 어부 석방을 위한 모금운동에도 팔을 걷고 나섰다. 2007년 11월에는 사재 1억원을 출연해 미성년 가장(중고생) 100명에게 장학금 100만원씩을 전달하기도 했다.
2008년 동서학원 이사장직에서 물러나 21세기 포럼 문화재단 설립하여 가정형편이 어려운 우수인재를 위한 장학사업에 주력하였다.
1950년대 부산기독교문인 협회를 결성하여 초대 회장을 지내면서, '기독교문예', '아가페', '로고스'등 월간지를 발행했다. 매일 2시간씩 집필, 총 25권의 책을 출판했다. 이 가운데 '디지털 사회를 사는 지혜'란 제목의 에세이집은 중국어로 출판돼 중국교육부에서 선정한 우수 교양서적 100권에 포함될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1977년 부산시 문화상을 수상했고 1978년 대통령 표창(교육공로), 2007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저서로는 [약속의 땅] [예수님 때문에] [일흔일곱 가지의 지혜] [좋은 습관 좋은 인생] [지도자의 길] [발상이 힘이다] [디지털 사회를 사는 지혜] [플러스 파워]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2015년 12월 6일, 지난 50년간 땀과 눈물로 일구어놓은 동서학원을 후세들에게 남겨놓고 주님의 품으로 떠났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동서학원 설립자 장성만 박사는 2015년 12월 9일 오전 11시, 돌 하나 나무 하나에도 설립자의 애정이 짙게 배여 있는 동서학원 캠퍼스를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동서가족들과 작별을 했다.